사족 - 글쓴이: 부득불 작성일: 14-11-19 12:26 > 세인트 루이스 모임 :: St. Lou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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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사족 - 글쓴이: 부득불 작성일: 14-11-1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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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기미 (75.♡.149.35) 댓글 1건 조회 4,438회 작성일 18-12-0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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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사성어 화사첨족으로 부터 유래되어진 사족의 의미는
뱀의 그림에 발을 그려 넣는 쓸데 없는 행위를 말하며
이미 완성 되어진 일에 필요 없이 가감 되어 그 완성도를
훼손 시키는 것을 두고 말한다.
 
얼마전 C.S Lewis의 '슬픔의 관찰'을 읽으며
자신의 슬픔을 하나님 앞에 담담하고 절실하게 그려낸
위대한 작가의 필력 앞에 사족이 떠올랐다.
어느 것 하나 폄하 할 수 없는 그의 지성보다
아프면 울어 버리는 어린아이의 표현력이 더욱
순수하고 열정적이지 않을까 하고 느꼈다.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 보고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바람을 한 숨 깊이 마셔 보자.
창조의 숨결이 내몸에 전해지며 감탄과 경외가 더해지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 아름다움은 철저히 인간의 손길이 배제된 상태이다.
우리의 손길이, 우리의 숨결이 더해질수록 그 아름다움의 완성도는 훼손 되어진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의 본질은 우리와 상관 없이 유지된다.
만약 그 아름다움이 가지는 고유의 성질이 사랑이라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사랑이 가지는 고유 정신 마저
사라지거나 훼손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사랑 없는 가운데 놓이게 될 뿐이다.
 
창조된 자연에 뿜어대는 나의 숨결,
성경을 통해 토해 내는 나의 행위는
나의 오감을 통해 더해지고 감해지는 사족의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주어진 완성도를 훼손시키고야 만다.
 
타고난 죄를 가지고 있음도 죄요,
그 죄로부터 벗어나려는 수고와 결과도 죄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악을 악으로 맞설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한계에서 오는 필연이다.
죄에 대한 무지도 죄요
죄에 대한 인지에서 오는 수고와 노력도 죄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서 주어지는 음성에는 애초 부터 이타적 선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무위에 빠지라는 건가
무위도 죄의 행위이다.
하지만 혼란스러워 할 것 없다.
선택 받은 아브라함이 행하던 투정과 어리석음은
그의 신앙 여정에 꼭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마다 본향을 뒤로 한채 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하시고
아브라함의 악함을 선으로 이끄셨던 것을 기억하면 된다.
다윗이나 솔로몬도 그들의 영화가 아닌 자신들의 죄로부터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그들 모두는 죄로 점철 되어진 자신의 인생속에
하나님을 통해 본향을 바라 보게 된 것이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그분의 완성도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나의 잠시의 불편함은 다름아닌 나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모든 것이 그분의  영원한 작정속에 있음을 잠시 간과한 것이다.
 
진리를 보고 죄를 뱉어 내는 나의 악,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과 위선으로 포장하는 나의 악은
그분의 선하신 인도 밖에 길이 없음을 아는 지식으로 인도 되어진다.
그분의 멍에가 나를 자유케 한다...

댓글목록

섬기미님의 댓글

섬기미 아이피 (75.♡.149.35) 작성일

섬기미 14-11-19 13:18
샬롬 전 집사님, 그리스도 안에서 문안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시는 모든 시험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있으려고 애쓰는 우리의 실체를 가감없이 폭로시켜 냅니다.
그 일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과는 상관없이 하나님 홀로 완성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이지요.

그 열심은, 다른 말로, '긍휼' 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법 아래 불순종의 자식으로 가두어 놓으신 것이
하나님의 그 긍휼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라면,
그 불순종 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의 내면이 폭로 당해야만 하나님의 긍휼이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 폭로 당함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 있는 나 자신의 죄인됨의 자각으로 이끌 것이고,
그 죄인됨의 자각은 하나님을 향한 울부짖음 가운데 그 죄를 바로 보게 됨으로 이끌 것이고,
그 죄의 직시는 나 위로 하나님의 그 긍휼이 온전히 덮어 그 죄를 도말하신 그 은혜로 이끌 것이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터져 나오는 감격과 찬송으로 이끌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그 시험 '페이라조' 의 그 이야기가,
모리아 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헤브론 땅 막벨라 굴, 하겔다마 그 피밭으로 끝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페이라조' 그 시험이 하나님을 향해 똑바로 세워지는 '도키마조' 의 확증으로 여겨짐을 받는다니,
그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승리요 사랑입니까?!

그러니, 이 땅 위의 그 세상을 작별하고 있는 인생의 여정을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힘써 모여 그리스도의 그 복음만을 서로 함께 먹고 마시며,
별 일 없이 하루 하루의 일상을 살아낼 수 있을 겁니다.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그 선을 밝히 드러내는 데 필요한 것이라면,
그 모든 것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처음부터 그 하나일 겁니다.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그 선과 그 악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이 세상 가운데
두 다리 쭉 펴고 쉴 수 있는 그 나라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미 우리에게 그 유언으로 약속되어져 있으니,
그 그리스도만이 영광 받을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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