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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본질에 대하여 - 글쓴이: 부득불 작성일: 14-12-0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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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기미 (75.♡.149.35) 댓글 1건 조회 4,531회 작성일 18-12-0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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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 '사족'에서 우리 인간이 창조물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외양적 아름다움은 우리로 인해 훼손이 가능하나
그 안에 내재된 아름다움의 본질은 결코 변함이 없음을  보았다.
우리의 어리석은 행위 또한 훼손 불가능한 그분의 영원한 작정속에
다루어 지고 인도 되어질 뿐이다.
무분별한 방종이 아닌 그분의 사랑에 의지한 약간의
대범한(?) 어리석음의 자유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면 그 아름다움에 변함 없이 작용되는 본질이란 무엇일까?
물론 우리의 경험과 사고에서 유추되어지는 본질이다.
하나님도 당신의 뜻을 인간의 언어를 통해 보이셨 듯
우리도 우리의 능력 범위 안에서 그분에 대해 사고 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본질이 사실은 그분의
원래 모습을 매우 제한할 수 밖에 없는 모순에 빠진다.
우물안의 개구리가 아는 하늘은 동그랗고 매우 작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를 허락하셨다....
 
여기서 사고하는 본질 역시 우리의 지성으로 밝혀진
사물 개개에 대한 구성 요소를 파악하기 보다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그 처음을 알고자 함이다.
예를 들면 물의 구성 요소는 수소와 산소의 결합으로
풀어낼 수 있지만 그 구성 요소의 진정한 기원에 대한
물음을 가지는 것이다.
 
우리가 제한적으로나마 사고할 수 있는 본질의 모습은
영원히 존재하여 그 스스로 불멸성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역설적으로 영원하지 않은 것이  모든 사물의 기원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외부 세계의 모든 물질은
그 점에서 본질적인 모습을 가지지 못한다고 보아야 한다.
 
본질은 또한 영원속에 변함 없는 선을 소유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우리의 변덕스러운 영혼을
존재의 본질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되며
그 스스로 선함을 가지지 못함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악은 선의 결여')
본질을 대신할 수 없다.
즉 빛으로 어둠을 규정해야지 어둠으로 빛을 설명하려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본질에 선함을 더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꽃으로 그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그안에 깃든 좋은 무엇을 증거하는 것이며
결여된 선으로는 절대 그로부터 아름다움을 발산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본질로 머리속에 떠오르는가....
영원속에 변함 없는 선을 가진 한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가..
한분 하나님과 그분의 하시는 일을 본질로 보야야 하지 않을까...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만물의 시작(태초) 위에 존재하는 영원의 하나님과 그분의 정신을
이루시는 일(창조하시니라)이 본질에 속하며
창조되어진 객체인 천지는 본질에 의해 규정되어진 비본질에 속한다.
그안에  살아 있는 하나님의 정신과 그에 관계되는 일만이 본질로 남는 것이다.
예를 들면 꽃의 외양적 아름다움은 바로 시들어 버리지만
그 창조에 관계 되어진 하나님의 선함(보기 좋음)은 영원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사는 끝날에 모두 태워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하신 일만이 태워짐 속에 영원으로 남는 것이다(고전 3장 10-15)
 
우리가 가진 지식, 사고 체계는 물론 영원해 보이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 또한 본질이 아니다.
본질인 하나님에 의해 인도 되어지는 그 부분만 본질로 여겨짐을 받게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본질 스스로 본질화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꼬리가 개를 흔들 수 없는 것 처럼 ^^
 
성경은 그 과정에 대해 우리가 최고의 하나됨으로 여기는
자녀됨이나 신랑,신부의 결혼 같은 혈연적 관계로 설명하고 있으나
우리에게 부어지는 하나됨(본질화)의 과정은 사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신비하고 오묘한 것일 것이다.
우리의 제한된 지성으로 그 하나님을 섣불리 추측 해서는 안됨이다.
 
우리는 힘든 세상살이를 하며
자주 ' 이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일까' 하는 질문을 갖게 된다.
모든 것이 태워 없어질 허상임을 기억해 낸다면
그릇된 판단을 줄이거나  그러한 생각 조차 부질 없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과 내안에 간직된 나의 모든 것들이
진리가 아님을 깨달아 갈때
우리는 그분의 진리 안에서 더욱 자유함을 얻게될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댓글목록

섬기미님의 댓글

섬기미 아이피 (75.♡.149.35) 작성일

원피디 14-12-06 15:06
샬롬 전집사님, 그리스도 안에서 문안 드립니다.

맞습니다, 빛은 어둠을 규정하는 기준이요, 어둠은 빛을 드러내는 매체일 겁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 그렇게 죽여서 살리는 돌, 곧 이 세상이라는 그 땅으로
위로부터 아래로 넘겨지신 하나님이요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
그 분만이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하나님의 아들 곧 그 하늘들을 품어 안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에만 그 하늘들이 나오고,
그 다음부터는 줄곧 그 땅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그리스도의 예수의 죽으시고 장사되어 다시 살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된 그 하늘들이 밝히 드러나 버리게 되었지요.
그러고 보면, 빛은 어둠을 규정하는 기준이요, 어둠은 빛을 드러내는 매체가 맞는 걸 겁니다.

기독자의 자유, 그리스도인의 그 자유는
죽어야 산다는 그리스도의 그 영광만을 밝히 드러낼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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