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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왜 레퀴엠은 슬퍼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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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기미 댓글 0건 조회 2,172회 작성일 18-12-0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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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음악을 즐겨 들을 때 자주 들었던 음악이 레퀴엠이었습니다.
'진혼곡', 레퀴엠은 저마다 뭔가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삶이 그리 명랑한 것만은 아닌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그 명랑함만을 위장하여 쏟아내고 있는 위선들이 꼴 보기 싫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것을 앞당겨 생각해 보고 그 무서운 죽음을 달래주마 하고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음산한 레퀴엠을 들었던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지강현이라는 탈주범이 세상을 한 번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TV 에서는 지강현을 비롯한 탈주범들이 어떻게 죽어 가는지를 헬기로 중계를 하고 있었고,
공중파 3사가 그 탈주범들이 최후의 죽음을 맞이했던 그 허름한 집을 포위하고 있었지요.
그 때 그 야위고 그늘진 지강현의 입에서 단말마처럼 튀어 나온 말이
세상 사람들의 가슴에 꽂혀 버렸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 있는 놈은 죄를 지어도 변호사 판사까지 사서 무죄로 풀려나고,
돈 없는 놈은 아무리 가벼운 경범이라 할지라도 보호감호까지 십수 년을 썩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의 동생이 천문학적인 돈을 착복하고 엄청난 비리에 연루되어 수감이 되었다가
금방 감형이 되어 출옥하게 된 것을 꼬집어 비난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탈주범들은 정말 배가 고파서 밥값을 도둑질한 사람, 
술 마시다 시비가 붙어 싸움질하다가 들어 온 사람,
추석에 어머님 선물을 마련하려고 백화점에서 도둑질하다가 걸린 사람,
그야말로 모든 세상 사람들이 가끔씩이나마 쉽게 저지르는 사소한 죄로 감옥에 들어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울화통이 터졌겠지요. 왜 안 그랬겠습니까?

세상은 그렇게 억지 속에서 돌아갑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억지에 대한 하소연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마저도 그 억지뿐인 세상을 고치시려 하지 않으십니다.
억울해서 미치겠는데도 하나님은 그 상황을 그저 보고만 계십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유리를 깨서 그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목을 그었겠습니까?
'이제 다시는 이런 억울한 사람들 만들지 말라고,
돈 있고 언제든지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는 당신들이 우리 같은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 좀 배려해 달라고'
그는 홀로 그 전쟁의 말미에 스스로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그 때도 저는 레퀴엠을 들었습니다.
그냥 그 사람들이 너무 불쌍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향해 총을 겨누며 욕설을 퍼부었던 그 무리 속에서 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레퀴엠으로 그 죽음을 달래려 해도 그 처참한 영혼은 달랠 수가 없었지요.

그 죽음이 무엇을 바꾸었나요? 뭐가 바뀌었습니까?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한 사람이 피를 철철 흘리며
'우리 약한 사람들 좀 가만히 놔두란 말이야!' 하고 외치고 갔는데 무엇이 바뀌었습니까?
세상은 그렇게 악한 것입니다.
마치 예수의 죽음을 선술집 안주거리로 밖에 생각지 않는 세상을 단면을 본 듯하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억울함과 그 억지에 대한 분통이 제게서 떠나 갔습니다.
어느 순간 저는 인간이 살다가 죽는 과정을, 
그저 단순하게 세포와 물질 덩어리들이 결합이 되어 잘 구르다가
때가 되어 해체된다는 식의 물리 환원주의적 해석은
인간과 같은 생명과 죽음의 현상에 대한 해명에 있어서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 지식을 제공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영원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억울함이 그렇게 억울하지 않습니다.
분통 터지는 일들을 오래도록 붙들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억울한 죽을들 앞에서 슬픈 진혼곡을 울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네요.

이 땅에서 아무리 슬프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죽음은 찬란한 영광의 서설을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억울함이 하나님의 자녀의 성숙에 방법이요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기에 이제는 레퀴엠이 식상하게 된 것이지요.

사는 게 그래요.
억울하시지요? 분통이 터지십니까? 고통스러우세요?
혹 이런 생각이 드시나요?
'이런 처참한 인생을 사는 난 이미 죽은 거나 방불해'
 
누구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하신가요?
그 누구도 여러분을 위로해 줄 수 없습니다.
세상의 레퀴엠은 여러분을 더욱 깊은 절망의 심연으로 인도해 줄 뿐입니다.
 
그 때 슬픈 진혼곡이 아닌 하나님의 위로의 노래를 들어 보세요.

'끝까지 이기는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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