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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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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섬기미 댓글 0건 조회 3,290회 작성일 18-12-0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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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원인이고 과정이고 결과입니다.
다른 누구가 아닌 그 한 사람을 사랑으로 감지한 것을 원인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가능성 있는 여럿을 앞에 두고 재보고 따지고 맛보아서 골랐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 사람을 맞닥뜨리고 보니 꿈꾸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봤다는 의미에서 이미 그 사람은 내 사랑의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과정이 등장합니다. 현재진행형이라는 말입니다.
부비 부비라는 그 흔한 유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시콜콜 삶의 모든 것을 나눠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런 자잘한 일상의 쌓음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허락하신다면 잠자는 시간도 아껴 분초를 나누고 싶은 것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여기에서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 은 원래 인간에게 속한 단어가 아닙니다.
인간사 모든 삶은 하나님의 완성된 나라에서 누리고 살 성도의 삶을 모형하는 것들일 뿐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내어놓는 사랑에도 그 한계는 태생적으로 있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하고 그 때 느껴지는 감정을 사랑이라 착각하며 열심까지 내어봅니다.

바로 '이' 이가 '그' 이다! 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까닭없이 시드는 감정에 놀라고 당황합니다. '이게 아니었어?'
그 제한성의 결핍을 느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대부분은 모형의 달콤함에 그냥 자신을 맡깁니다.
내가 가진 이것이 내가 찾아다닌 그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입니다.

진리를 외면하고 거짓에 매달리는 그 마음이
내가 가진 것을 팔아 나의 필요를 채워줄 것으로 바꾸는 세상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완전하거나 아니거나, 참 사랑이거나 아니거나 이지 두 주인을 섬기는 닮은 꼴 사랑은 안됩니다.
아무리 비슷해도 거의 그것 같아도 결국 이 땅의 제한성이 보여질 뿐입니다.
성도만이 '그 한계에서 한계를 넘어 진리를 찾아내고 보아내는 자' 입니다.

'엘비라 마디간' 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장면 장면이나 내용이 다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서로를 참 사랑이라고 믿는 남녀가 사회적 거부를 등에 지고 도피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의 사랑을 지속시킬 만큼 관대하지 않았고,
이러 저러한 사회적 제약에 몰린 그들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는 것으로 결론을 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속에 아름답게 깔리던 모짜르트의 음악과
그 한 편의 영화만을 찍고 다시는 영화를 찍지 않았던 여배우의 신비로움이
상품화 되어 한동안 대단한 사랑의 결말처럼 우리를 부채질했던 영화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어디에 사랑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몽환적 그림으로 처리했던 도피의 들판들,
들꽃을 꺾어 햇살을 받으며 뛰놀던 아름다운 여자의 눈부시게 하얀 드레스 ...
그렇지만, 사실적인 상황은 그저 들풀이 난무하는 땡볕의 어느 한 낮에
먹을 것이 없어 처량하고 슬픈 남녀일 뿐입니다.

사랑을 지켜내는 방법을 몰라 죽음으로 장식하면, 그 사랑의 유효기간이 영원해집니까?
결국 사랑의 대상들은 죽었을 뿐인데 말이지요.
내용만 남아 대상을 잃어버린 것은, 사랑이라는 관념이지 실제적 사랑이 아닙니다.

세상의 사랑은 자신이 죽음으로 상대를 살려내는 예수님의 사랑까지 모방하려 듭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의 속성 중 현재진행형을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결과도 가질 수 없습니다.
성도의 자폭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우린 반드시 결론지어져야 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사랑만이 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알지만,
이 땅에 떨어지는 추락으로 잠시 기억을 상실한 성도들은 늘 그것을 찾아 헤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의 모형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에 마음을 뺏기고 눈을 돌립니다.
꼭 그거 같거든요. 내가 기억했던 바로 그 사랑 같거든요.

그런데, 아닙니다.
채워지지 않고 늘 갈증에 시달립니다.
사랑의 언어가 뿌려지고 공허한 말들이 약속으로 주어지는데, 믿기지가 않고 불안합니다.
붙잡을수록 힘을 준 손에서 그 기운은 빠져 나갑니다.

우린 완전히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사랑은 없다' 를 그 때 외칩니다.
그 자리에 하나님이 찾아 오십니다.
내가 그렇게 찾아다닐 때는 보이지 않던 그 실체가
이제 환한 빛으로 내게 다가와 나의 시선을 돌려놓습니다.
이제 보니 알겠습니다. 바로 이 분이었음을 ...

그 참 사랑의 현재는 기다림이며 견딤입니다.
정말 꿈같이 내게 다가왔는데, 정작 실체는 육의 눈으로 감지가 되지 않습니다.
분명 느끼고 사랑했는데, 어느새 내 눈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뭐 이런 사랑이 다 있느냐 이 말입니다.

연인의 자격으로 치면 예수님처럼 무심하고 냉정해 보이는 상대가 또 있겠습니까?
꿈에 한 번 나타나길 하나, 다정히 다가와 손 한 번 잡아주길 하나,
말씀이 되어 오셨다고 해서 열심히 말씀으로 그 사랑을 만나려 하는데
그 안에서 들리는 말은 '고난을 받아라, 아파라, 죽어라' 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내리는 밀어가 뭐 이렇습니까?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랑 말고,
내게 떡을 주고 천하를 주겠다는 보암직한 연인을 찾아 나서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겠습니까?
참 사랑의 내용을 말씀 안에 심어놨는데,
내 귀에 달콤한 말들로 바꿔 내놓는 거짓 밀어에 우리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불러도 보고 외쳐도 보는데, 도무지 말이 없습니다.
'난 널 사랑한다. 내 말을 믿어라." 그 말 하나 던져놓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우린 이제 어떻게 기다려야 하고 견딜 수 있습니까?
보길 원하고 만져 자각하길 원하는 도마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 그냥 믿음을 부어 버리셨습니다.
그러자 그의 앞에서 사랑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것이 참 관계의 성립입니다.

우린 아파치족도 아니고, 모히칸족도 아니고, '사랑족'들 입니다.
그 사랑으로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참 사랑을 만나게 되면 이제껏 나의 모든 사랑의 경험이 헛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사랑을 자각하게 하기 위한 모형이었을 뿐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결과요 결론입니다.

완전히 확인 도장이 찍힌 사랑의 증서가 우리 각자 입니다.
그것이 심비에 새겨진 믿음이요 사랑의 증표입니다.
실반지 하나 나눠 끼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가능해지는 관계가 우리 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자리에서
약속한 그 믿음 하나로 견디고 살아갈 수 있는 신부가 우리 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랑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마침내 이 사랑을 만났고 누립니다.
만나보니 알겠고, 동일한 사랑을 받은 자들만이 알 수 있는 사랑입니다.
사랑, 이거 세상에 속한 것 아닙니다. 하늘 나라 성품입니다.
그 나라를 알고 허락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정말 대단한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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