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성삼이의 편지 > 집으로 가자 :: 김성수 목사 ::

본문 바로가기

집으로 가자 :: 김성수 목사 ::

(53) 성삼이의 편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섬기미 댓글 0건 조회 3,099회 작성일 18-12-08 10:50

본문

제가 성삼이라는 아이를 알게 된 것은 7년 전입니다.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 시의 외곽에 있는 수화라는 곳에
제가 가르치던 청년들 몇 명과 함께 선교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문이 없는 재래식 화장실을 보고 아연해 하던 우리 청년들 얼굴이 생각나네요.
미국서 손님들이 오셨다고 끼니 때마다 보신탕을 끓여 내어 오시는
순박한 얼굴의 교장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우리 선교 팀 중에 보신탕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교장 선생님께 실례가 될까봐 한 그릇씩 후딱 비우고 배를 두드리며
너무 맛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착한 우리 청년들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중국은 열여덟 살 미만인 아이들에게 포교활동을 하면 형사(刑事) 처벌(處罰)을 받게 되어 있어서
우리는 마음 놓고 예수님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아이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놀아주고,
영어도 가르쳐 주고, 고민도 들어주고, 작은 음악회도 열어 주었습니다.

일주일이지만 아이들과 얼마나 정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마비막 날 학교 운동장 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아팠던 일, 잊어버리고 싶었던 것들을 다 싸와서 운동장 한 가운데서 다 태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함께 즐겁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얼빈의 하늘은 지금도 그렇게 별이 많겠지요.
그 밤이 그렇게 깊어 가고
이제 날이 새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떨어질 줄 모르고 옆 사람의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녕 친구여' 라는 노래를 부르며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포옹을 하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눈물이 흘러 일부러 어두운 쪽으로 다니면서 아이들과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한 아이가 참지 못하고 엉엉 울어 버렸습니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 명년에 다시 만나요.'
'얼마나 사랑이 그리우면 다 큰 녀석들이 저렇게 울까'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금방 운동장은 울음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눈물을 닦았습니다.
몇 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저렇게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청년들과 아이들은 각자의 교실로 들어가 일주일간 함께 했던 소감을 나누고
이제 정말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교실에 들어서자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저는 뒤돌아서 칠판을 한참 바라 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흘렀는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처 눈물을 닦지 못하고 돌아섰을 때 한 아이가 말을 꺼냈습니다.

"선생님, 예수 믿지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일주일 간 우리는 한 번도 예수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할 때도 눈을 뜨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저 불쌍한 아이들이 저렇게 살다가 천국마저 못 간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시겠냐고,
부디 저 아이들에게 예수의 은혜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말이지요.
마지막 날 밤 아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저를 정말 놀라게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아이들에게 먼저 목음을 전하는 것은 금하고 있지만,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기회가 온 것입니다. 저는 대답을 했습니다.
'맞다,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러 왔단다.
그리고, 미국에 돌아가서도 늘 너희를 위해 기도할 거란다. 너희들을 정말 사랑한다.'
그리고는 예수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이야기와
우리는 그 예수와 함께 영원히 천국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중에 성삼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구창모와 녹색지대의 노래를 아주 잘 부르는 아이였습니다.
오락 시간만을 기다리며 영어 공부 시간에는 여선생님 얼굴만 쳐다보는 무척 성숙한,
중학생치고는 덩치가 제법 큰 아이였습니다.

그 때는 그 녀석이 별로 눈에 띠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들이 써서 건네 준 편지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일 주일 간의 행복한 시간을 반추했습니다.
그 편지들에는 우리가 상상했던 거와는 달리 예수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선생님, 나도 선생님이 믿는 예수를 믿고 싶어요.'
'선생님, 우리 엄마도 사실은 몰래 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선생님, 나는 엄마가 믿는 예수에 관심이 없었어요. 이제 교회에 다닐래요.'
너무나 시기하고 가슴이 벅찼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의 일을 손수 하시고 계셨습니다.

그 중에 성삼이의 편지가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삐뚤삐둘한 글씨체로, '선생님 벌써 보고 싶어 죽겠어요. 나도 예수님 믿고 싶어요.
그래서, 선생님들처럼 봉사활동 하고 싶어요.'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니 
벌써 중국에서 아이들로부터 편지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삼이의 편지가 가장 길었습니다.
그 녀석은 유난히도 정이 많은 아이여서 그런지 편지의 구구절절이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운동장 한 가운데 피웠던 모닥불이 꺼진 그 자리에
매일 찾아가 선생님들을 그리면서 그 모닥불 자리를 만져본다고 했습니다.
가슴이 찡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그렇게 그리워 해준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그 녀석은 그 길로 중국의 삼자 교회를 찾아 갔고,
미국서 온 선생님들이 믿는 예수를 배우고 싶어 안달을 부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자르쳐 준 사람이 없었다지요?
성삼이와 저는 이메일과 편지를 통해 자주 연락을 했습니다.
그 편에 저는 복음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그 아이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 마치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우리 선교팀의 중국 현지 코디네이터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통역서부터 버스 예약, 여관 예약까지 우리는 성삼이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중국 선교를 통해 성삼이와 같은 현지 제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습니다.
그 아이들과 함께 먹던 중국 불고기와 기름기 많은 여러 가지 요리도 생각이 나네요.
심지어 문이 없는 화장실도 그립습니다.
잘들 지내는지, 영이, 림이, 미나, 화영이 ... 올 해 대학에 진학한 중국의 제자들입니다.
 
명년에는 아예 교회를 하나 빌려 그 아이들에게 올바른 교리 강론을 하고 올 예정입니다.
그 아이들이 이미 열여덟 살이 넘어버렸거든요.
아이들이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는 사랑을 퍼부어서 그 아이들에게 사랑을 실습하고
열여덟 살이 되면 그 사랑의 원천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해 주는
이런 우리 청년들의 선교가 저는 자랑스럽고 대견합니다.
계속해서 제이 제삼의 성삼이가 복음으로 중국을 뒤집어 엎을 날을 기대하며
우리는 오늘도 열심이 사랑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성삼이가 보낸 편지>

보고 싶은 선생님께

오늘도 해가 지는 저녁에
아무도 없는 스산한 거리를 지나 나 혼자 걸어 교문 앞까지 와 버렸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벌써 며칠이 지나가 버리고 그 날 밤의 그 모닥불은 없어졌어도
저는 매일같이 그 자리에 앉아 저 바다 건너 어딘가에서 날 위해 기도해 줄 선생님을 그리며
모닥불 자리를 만져 봅니다.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친구들과 나는 매일 같이 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를 하며
'명년에 다시 보자' 는 인사를 나누던 그 자리에서 한 참을 서 있다가 집으로 돌아갑니다.

선생님이 떠나고 난 후 선생님이 말씀하시던 예수님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저희도 수업 시간에 예수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그냥 공자나 맹자 같은 위인이었지,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믿어야 할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정말 예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도 죽으신 거 맞나요? 그렇지요?
저는 친구에게 자랑합니다. 나 교회 다닌다고, 그리고 예수 믿는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여기 교회는 사랑이 없어요.
선생님들처럼 우리를 사랑해 주는 선생님 이곳 교회에도 있다면
저는 매일같이 그 곳에 가서 예수를 배우고 싶은데
저 같은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이 와 봤자 연보도 못하니 그런가 봐요.

선생님, 선생님이 많이 가르쳐 주세요. 저도 예수를 믿을 랍니다.
몇 밤이 더 지나가면 선생님이 다시 오지요?
저는 매일같인 그 날만 기다려요. 선생님, 안녕!

중국에서 성삼이가
 

그렇게 기다리던 성삼이를 다음 해에 만나기 위해 우리는 또 중국 선교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화 조선족 중학교의 학생이 너무 많이 줄어서 학교를 폐쇄하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에 이런 저런 행사를 치르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 올 해는 오지 말아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희는 눈물을 머금고 하얼빈 시내에 있는 도리 소학교라는 곳으로 목적지를 바꿨습니다.
며칠을 도리 소학교에서 보내는 동안 계속 성삼이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제 중학교 학생인 녀석이 그 먼 길을 찬아오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창밖을 내다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사흘 째 되는 날 도리 소학교 선생님께서 제가 가르치는 교실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어떤 아이가 저를 찾아왔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중국에서 누가 나를 찾아왔을까 의아해 하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거기에는 때가 줄줄 흐르는 까만 배낭을 하나 멘 성삼이가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너무 반가웠습니다.
성삼이는 우리 선교팀이 도착하는 날 하얼빈 공항에까지 나왔었답니다.
그런데, 한 발 늦어서 우리가 버스를 타고 떠나는 것을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후로 하얼빈에 있는 조선족 중학교와 소학교를 걸어서 하나하나 뒤지고 다닌 것이었습니다.
그렇데 성삼이는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고집스럽게 당신의 백성을 찾으신다는 것을 저는 성삼이를 통해 또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성삼이를 그렇게 우리에게 보내셔서 며칠을 함께 보내게 하심으로
예수를 믿는 이들이 왜 이렇게 자비를 들여 선교를 가서 그 곳에서 봉사를 하는지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성삼이는 그 때부터 보조 교사가 되어 기도회에도 참석하고
우리 선교팀 예배에도 참석해서 하나하나 기독교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그래서 우리는 올 해도 또 열심히 중국으로 떠나게 되는가 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98건 4 페이지
집으로 가자 :: 김성수 목사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62 섬기미 3102 12-08
61 섬기미 3366 12-08
60 섬기미 3134 12-08
59
(59) 미로 댓글+ 1
섬기미 3491 12-08
58 섬기미 2898 12-08
57 섬기미 3029 12-08
56 섬기미 2977 12-08
55 섬기미 2384 12-08
54 섬기미 3082 12-08
열람중 섬기미 3100 12-08
52 섬기미 2749 12-08
51 섬기미 3289 12-08
게시물 검색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접속자집계

오늘
51
어제
370
최대
1,499
전체
186,908
2024 년 4 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lways be careful with your enthusiasm. Even if your enthusiasm gets cool, watch out for your enthusiasm. Christians are not good people, but the faithful people.


God the Father, God the Son, God the Holy Spirit,
Praise the LORD!
Copyright © 2011-2024 Smyrna Church Northern California, USA, All rights reserved.
Contact us: admin@woorichurch.us